노래방
방음이 된 방에서 가사가 화면에 나타나는 음악 반주기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도록 장치를 해 놓은 곳
- 표준국어대사전
#1. 당신의 반주자, 기계로 대체되었다
1950년대 일본의 술집에는 손님의 노래에 반주를 연주하는 뮤지션이 있었어요. 하지만 점차 높은 인건비와 주크박스, 유선방송 등의 등장으로 사라지고 있었죠.
그런 상황에서 여러 노래반주기가 등장했어요. 오늘날 노래방 기계처럼 돈을 넣으면 재생되는 기계는 1971년 이노우에 다이스케가 만들었는데요. 그가 만든 노래반주기는 자신이 편곡한 반주를 8트랙 오디오 테이프*에 녹음해 동전을 넣으면 한 곡씩 재생되는 기계였죠.
이 노래반주기는 가라오케라고 불렀는데요. 가라오케는 ‘빈(空: カラ: 가라) 오케스트라’의 줄임말로 반주가 흘러나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장치라는 의미이죠.
* 8트랙 테이프는 우리가 알고 있는 카세트테이프의 이전 버전이에요. 1960년대에 발명되어 80년대까지 쓰였죠.
#2. 노래방 이전에 가요방
70년대 말, 부산에는 부산-시모노세키 페리편이 있어, 출장 혹은 관광으로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을 방문했어요. 이들을 호객하기 위해 부산의 술집에서는 가라오케를 들여놓고 영업을 했죠. 이는 '가요방'이라고 불리며 한국 손님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기 시작했어요. 이후 8트랙 오디오의 시대가 가고 작고 저렴한 카세트테이프의 시대가 오면서 가라오케는 널리 보급되죠.
#3. "아아, 이것은 [비디오] 라는 것이다"
80년대 일본에서는 영상이 나오는 가라오케가 등장했는데요. 화면에는 가사가 등장하고, 박자에 맞게 글씨가 변하는 기계였죠. 국내에서는 90년대 초반 삼성전자가 '비디오케'를 선보였는데요. 당시 비디오케의 가격은 업소용 1백 48만 원, 가정용 64만 8천 원으로 고가의 제품이었음에도, 1992년 한 해 동안 국내 12만 대, 국외 7만 대가 팔리며 '올해 삼성전자의 최대 히트상품'으로 선정되었어요. 당시 삼성전자는 판촉활동으로 노래자랑 결선대회를 열기도 했죠.
#4. 이제야 노래방답다
1991년 4월 부산 동아대학교 앞 로열 전자오락실에 전화박스 같은 작은 공간에 300원을 넣고 노래 한 곡을 부를 수 있는 기기가 설치되었어요.
한 달 뒤에는 해운대에 '하와이 비치 노래연습장'이 들어서는데요. 이곳이 최초로 법적 승인을 얻어 노래방 영업을 시작한 곳이에요. 초기 노래연습장은 오락실에 설치된 ‘동전 노래방’이 여러 개 있는 형태인데요. 지금의 코인노래방과 같죠.
이후 90년대 초반엔 손님이 직접 동전을 넣는 것이 아닌, 카운터에서 선불한 후 부른 곡 수만큼 차감되는 방식이 등장했어요. 이 방식은 시간을 표시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어 자리 잡았죠.
#5. 가라오케, 한국만 노래방인 이유
초기 가라오케는 술집의 유흥문화라는 인식과 일본에서 건너온 '그릇된 왜색 문화'라는 이미지가 있었어요. 90년대 초반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외국의 것은 안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거든요. 당시 대학교에서는 '노래방 가지 않기', '외국계 편의점 가지 않기', '외제품 쓰지 않기' 등의 운동을 벌이기도 했어요.
이 때문에 가라오케 기기를 판매하던 삼성전자를 비롯한 업체들은 가라오케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죠. 외국에서는 가라오케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만 노래 반주기, 노래방이라는 이름이 사용된 것은 이러한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죠.
#6. 가라오케 공중파 진출기
노래방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1991년 술과 음식의 반입이 제한된 '노래방' 업종을 허가하면서부터라고 볼 수 있어요. 1999년에는 청소년들의 노래방 출입이 가능해지기도 했죠.
방송에서는 1988년 MBC TV 주부가요열창에서 노래방 시스템이 도입되었어요. 방영 한 달 만에 시청률 50%가 넘은 이 인기 프로그램은 1991년에 삼성의 비디오케를 도입했죠. 이 프로그램 덕분에 판매량이 급증했음은 물론, 퇴폐적 유흥업소에 있는 기계라는 이미지가 바뀌게 되었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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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현. (2016). 한국 노래방의 성장을 둘러싼 사회문화사: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중심으로. 문화와 사회. 제2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