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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역사 800년이 담긴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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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책에서 중세의 이야기가 나올 때면 당시 사람들이 사용했던 물건들이 궁금해질 때가 있지 않나요? 저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것들과는 얼마나 다를까?' 하는 궁금증이 들곤 하는데요. 오늘부로 화장품과 향수에 대한 궁금증은 해결되었습니다! 바로 1221년부터 이어져 온 브랜드, 산타 마리아 노벨라가 있거든요.
산타 마리아 노벨라는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이번 기회에 1381년부터 제조되었다는 장미 스킨 토너를 구매해 보았는데요. 은은한 향이 매력적이더라고요. 중세 사람들의 기호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나 봅니다.

Fig 1. 수도회의 약에서 시작한 산타 마리아 노벨라

Figure.1 산타 마리아 노벨라 수도원의 모습, 오늘날에도 이때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도미니크 수도회의 수도사들은 1221년 이탈리아 피렌체에 자리를 잡아 산타마리아노벨라 수도원을 설립합니다. 이들은 수도원 정원에서 약초를 키워 약을 만들었죠. 이 약으로 가난한 이들을 돕고, 판매하기도 했어요. 이러한 역사적 이유로 지금도 산타 마리아 노벨라 간판에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 약국Farmaceutica di Santa Maria Novella 이라고 쓰여있죠.
Figure.2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화장품인 아쿠아 디 로즈 ⓒ산타마리아노벨라
1381년 이들이 판매했던 약의 조제법이 남아있는데, 바로 ‘아쿠아 디 로즈Acqua di Rose’라는 장미수입니다. 이 장미수는 중세 유럽에서 흑사병이 유행하던 시기에 소독하는 데 쓰였다고도 알려져 있죠. 아쿠아 디 로즈는 지금도 판매하고 있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화장품이랍니다.

Fig 2.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향수를 쓰는 자, 여왕이 된다!

Figure.3 아쿠아 델라 레지나(여왕의 물)의 원래 이름은 아쿠아 디 산타 마리아 노벨라 였다 ⓒS.M. Novella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이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곳이었습니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도 영향을 받아 메디치 가문을 위한 제품들을 만들어 냈죠.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1533년에 만들어진 ‘아쿠아 디 산타 마리아 노벨라Acqua di S.M. Novella‘ 라는 향수입니다. 메디치 가의 캐서린 드 메디치Catherine de Medici 가 프랑스로 시집을 갈 때 혼수품으로 제작된 것이었죠.
당시 메디치 가문은 벼락출세한 가문으로 여겨져 이 결혼에 대한 프랑스 귀족들의 반대가 있었는데요. 당시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 1세는 캐서린이 왕비가 될 일은 없을 것이라고 귀족들을 안심시키며 그의 둘째 아들인 오를레앙 공작 앙리와 결혼시켰습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맏아들 프랑수아가 일찍 죽어 앙리 왕자가 프랑스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렇게 왕비가 될 일이 없으리라 생각되었던 캐서린이 프랑스의 왕비가 되었죠. 이에 따라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향수도 ‘여왕의 물Acqua della Regina‘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Fig 3. 7인조 도둑의 비밀 약품

Figure.4 ‘Casa Fondata nell’Anno 1612’가 적힌 로고 ⓒS.M. Novella
산타마리아노벨라 수도원은 1221년에 세워졌지만, 로고에는 Casa Fondata nell’Anno 1612 라는 문장이 쓰여있습니다. 이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가 수녀원으로부터 독립되어 일반인에게 공개된 해가 1612년이기 때문이죠.
수녀원으로부터 독립되었지만, 한동안은 도미니크 수도사가 운영했는데요.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1대 원장은 연금술과 약학에 통달한 안죨로 마르키시Fraiar Angiolo Marchissi 신부로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 2세가 그에게 왕실 주치 약사라는 칭호를 내리고 임명한 것이죠.
공식적으로 약국으로 허가받은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수도사들은 유럽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선교 활동을 했기 때문에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제품도 유럽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18세기에는 러시아, 인도, 중국에도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제품이 팔렸죠.
Figure.5 7명의 도둑이 각자 한 가지씩의 재료를 알고 있었다는 그 식초 ⓒS.M. Novella
이 시기 탄생한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제품 중에 방향 식초, 소화제, 기침 치료제 등은 아직도 판매되고 있는데요. 이 중 방향 식초인 '아체토 아로마티코Aceto aromatico '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 식초에는 7가지 재료가 들어가는데 7명의 도둑이 각자 한 가지씩의 재료만 알고 있어 이들이 모두 모여야 만들 수 있었어요. 이 식초를 몸에 바르면 전염병이 돌고 있는 마을에 들어가 도둑질해도 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하죠.

Fig 4. 위기를 뜻 깊은 제품으로 승화시키다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1859년에서 1870년까지 이탈리아 통일 운동이 일어납니다. 프랑스의 도움으로 통일을 이루어 낸 이탈리아 정부의 행보는 신통치 못했는데요. 경제적으로 이탈리아를 파탄 냅니다. 부족해진 세금을 충당하기 위해 교회 재산과 영토를 국유화시키죠. 이때 산타 마리아 노벨라도 국유화에 휘말리게 됩니다. 다행히 1871년 교회 보장법이 통과되면서 교회의 재산이 보장되고 산타 마리아 노벨라는 마지막 수도원장의 조카인 체사레 아우구스토 스테파니Cesare Augusto Stefani 에게 양도됩니다. 이 가문의 자손들이 약국을 상속받으면서 4대에 걸쳐 사업이 운영됐죠.
Figure.6 워피렌체 대홍수 때 찾아온 봉사자들을 헌정하는 향수 ‘피렌체의 천사들 Angels Di Firenze’ ⓒS.M. Novella
국유화의 위기는 잘 넘겼지만 1966년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옵니다. 11월 4일 피렌체 시내를 관통하는 아르노 강이 범람합니다. 34명이 죽고, 수많은 피렌체 시내의 건물과 문화재들이 손상되거나 소실되는 대홍수였죠.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매장도 완전히 잠겨 진흙탕이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봉사자들의 도움으로 매장을 복구할 수 있었죠. 이때 흙탕물이 남긴 흔적이 지금도 벽면에 남아있다고 합니다. 2006년 산타 마리아 노벨라는 피렌체 대홍수 40주년을 맞이하여 당시 찾아온 봉사자들을 헌정하는 향수, ‘피렌체의 천사들 Angels Di Firenze’를 출시합니다.

Fig 5. 경영 위기, 전통으로 극복하다

Figure.7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CEO 에우제니오 알판데리 ⓒlepoint.fr
1980년대 후반에는 로레알과 같은 대기업 화장품 브랜드에 밀려 경영난을 맞습니다. 1990년 남은 매장은 본점 한 곳에 직원 5명 뿐이었죠. 위기를 맞은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CEO가 된 에우제니오 알판데리Eugenio Alphandery 는 회사의 장점과 개선점을 분석합니다.
그는 산타마리아노벨라의 경쟁력은 전통과 품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400년간 지속해온 제품의 품질을 유지하고 전통을 지켜야한다고 생각했죠. 피렌체에서 난 원료를 바탕으로 과거 수도사들이 기록해 둔 레시피 재현합니다. 정원에서 허브를 직접 채취하며, 발사미테를 채취하는 날도 전통에 따라 피렌체의 수호 성인 지오반니의 축성일인 6월 24일에 추수를 하죠. 반면 노후화된 공정은 개선하는데요. 생산 설비를 새것으로 대체하고, 기계 포장을 도입해 생산량을 늘렸어요.
알판데리의 전략은 적중했고 산타마리아노벨라는 전 세계 75개국에 진출했습니다. 5명이던 직원은 500명 이상으로 늘어났죠.

산타 마리아 노벨라 브랜드의 역사를 요약하자면,

1.
산타 마리아 노벨라는 1221년 피렌체에 세워진 도미니크 수도원에서 시작합니다. 흑사병을 이겨내기 위해 만들었던 약인 장미수가 현재까지 이어져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화장품이 되었죠.
2.
1533년에는 캐서린 드 메디치의 혼수품으로 첫 향수를 만드는데요. 훗날 캐서린이 프랑스 여왕이 되어 이 향수는 ‘여왕의 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오늘날에도 판매 중이죠.
3.
산타 마리아 노벨라 매장은 1612년 수도원으로부터 독립되어 일반인들에게도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유럽 전역은 물론 18세기에 이르면 러시아, 인도, 중국에도 제품을 팔았죠.
4.
19세기 중반 국유화 위기, 20세기 중반 피렌체 대홍수 등으로 위기를 겪지만 잘 이겨냅니다. 2006년에는 피렌체 대홍수 40주년을 맞이하여 당시 찾아온 봉사자들을 헌정하는 향수, ‘피렌체의 천사들’을 출시하죠.
5.
대기업 화장품 회사에 밀려 1990년 직원이 5명뿐인 회사가 되었습니다. 당시 CEO가 된 에우제니오 알판데리가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전통성을 살리고, 대량생산 설비를 도입해 산타 마리아 노벨라를 일으켜 세우죠. 전 세계 75개국에 진출하고, 직원은 500명 이상으로 늘어났습니다.
Reference.
윤형준. (2021). 레드의 법칙. 틈새책방.
작자미상. (2023). 산타마리아노벨라 : 향은 이야기다, 800년 기억을 향수병에 담은 브랜드. 롱블랙. URL : https://www.longblack.co/note/730
산타 마리아 노벨라 웹사이트. URL : https://eu.smnovella.com/pages/our-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