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형 및 공간의 성질에 대하여 연구하는 학문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Fig.1 기하학 = 땅 측정
기하학은 ‘Geo(땅) + metry(측정)’라는 말 그대로 땅을 측정하기 위한 도구로 시작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나일강이 해마다 범람하면서 농경지의 경계가 무너지고 사라졌기 때문에, 홍수가 끝나면 다시 토지를 나누고 경계를 확정할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이때 사용된 것이 바로 측량술, 즉 오늘날의 기하학의 원형이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단순히 길이만 재는 자를 쓰는 것으로는 정확한 면적을 계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네 변이 모두 같은 길이라고 해서 사각형의 넓이가 같은 것은 아닙니다. 정사각형과 마름모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죠. 따라서 넓이를 정확히 재려면 변의 길이뿐 아니라 각도의 정확성까지 확보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밧줄 측량법입니다. 긴 밧줄에 일정한 간격으로 매듭을 지어 눈금을 만들고, 이를 이용해 삼각형이나 직각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3-4-5 법칙으로, 밧줄을 12칸으로 나누어 3칸·4칸·5칸을 이어 삼각형을 만들면 언제나 직각이 생긴다는 사실을 이용한 것이죠. 이렇게 직각을 잡으면 땅을 사각형이나 삼각형으로 정확히 분할할 수 있었고, 넓이를 계산하기도 쉬워졌습니다.
이러한 실용적인 기하학은 단순히 토지 재분배에만 쓰이지 않았습니다. 피라미드 건축 같은 거대한 건축 사업, 신전 설계, 천문 관측에도 응용되었습니다. 특히 천문학은 농경사회에서 계절과 절기를 예측하는 데 중요했기 때문에, 기하학은 자연스럽게 하늘의 별과 땅의 토지를 동시에 다루는 학문으로 발전했습니다.
Fig.2 유클리드 기하학
교역이 활발해지고 물자가 풍부해지면서 민주주의와 토론 문화가 성장한 고대 그리스에서는 실용적 필요에서 출발한 기술들이 이론적 탐구로 이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결정판이 바로 유클리드 기하학입니다. 유클리드Euclid 는 《기하학 원론》을 집필해, 당시까지 알려진 기하학 지식을 정의, 공리, 증명의 구조로 체계화했습니다. 그는 몇 개의 기본 공리(예: 두 점을 잇는 직선은 하나뿐이다, 모든 직각은 서로 같다 등)를 세우고, 그로부터 수백 개의 정리를 연역적으로 이끌어냈습니다. 이 방식은 “수학을 논리적 건축물로 쌓아올린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고, 2000년 넘게 서양 수학의 표준 교과서로 쓰였습니다. 하지만 중세 서구에서는 수학이 정체되었고, 대신 이슬람 세계에서 계산 중심의 대수학이 발달했습니다.
Fig.3 르네상스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 기하학이 다시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아시아로 가는 육상 교역이 막히자, 유럽인들은 해상 교역로를 개척해야 했는데요. 그 이유는 항해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바다에서는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와 어디로 가야 하는 지를 정확히 알 방법이 필요했죠. 이때 기하학이 핵심 도구로 쓰였습니다.
① 지도 제작
르네상스 시기는 이미 지구가 구형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제 둥근 지구를 어떻게 평면 지도에 옮길지라는 투영 문제가 대두되었죠. 1569년 네덜란드의 지도 제작자 게라르두스 메르카토르Gerardus Mercator 가 혁신적인 투영법을 고안했습니다. 그의 지도는 각을 보존하는 정각투영이었는데, 위도가 높아질수록 세로 방향을 인위적으로 늘려 지도 위의 위도·경도 격자가 언제나 직각으로 교차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항해자는 나침반으로 일정한 방위를 유지하며 항해하면, 지도 위에서는 그 항로가 직선으로 표현되었고, 이는 긴 항해를 훨씬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물론 고위도 지역이 실제보다 과장되어 나타나는 왜곡이 있었지만, 항해 실용성 면에서는 혁명이었습니다.
② 위도
항해에서 선원들은 자신이 있는 위치를 위도와 경도로 기록해 지도에 표시했습니다. 위도는 북극성이나 태양이 지평선 위에서 뜬 높이를 각도로 재어 계산했는데, 지구가 구체이기 때문에 관측 장소에 따라 하늘의 고도가 달라진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적도에서는 북극성이 지평선과 일치해 고도 0°로 보이고, 북극에 가까울수록 하늘 높이 올라가 북극에서는 머리 위 90°에 보입니다. 이 방법은 고대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도구의 발명과 개량으로 훨씬 정밀해졌습니다.
③ 경도
위도와 달리 경도는 오랫동안 난제로 남았습니다. 경도는 지구가 24시간 동안 360° 회전한다는 사실을 이용해, 현지 시각과 기준 시각의 차이로 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런던에서 정오일 때, 내가 있는 곳이 오후 2시라면 그곳은 런던보다 30° 동쪽에 있는 것이죠. 하지만 문제는 흔들리는 배 위에서는 모래시계나 물시계가 쓸모없었기 때문에 바다에서 정확한 시각을 알 방법이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난제를 해결한 인물은 영국의 시계공 존 해리슨John Harrison 이었습니다. 그는 흔들림과 온도 변화에도 정확히 작동하는 시계를 만들어냈습니다. 금속의 팽창·수축을 보정하는 합금과 정밀한 톱니바퀴, 균형추 구조를 고안했고, 결국 휴대 가능한 항해용 크로노미터를 완성했습니다. 이 시계는 바다 위에서도 하루 오차가 수 초에 불과했죠.
배에서 시간을 알 수 있게 되자 경도를 구하는 방법은 단순했습니다. 출항할 때 그리니치 기준 시각에 맞춰둔 크로노미터를 가져가고, 항해 도중 태양이 가장 높이 떠 현지 정오가 되었을 때 크로노미터의 시간을 읽습니다. 만약 그리니치 시각보다 1시간 늦다면 경도 15° 서쪽, 1시간 빠르면 15° 동쪽에 있는 것입니다. 즉, 시간 차 × 15° = 경도라는 간단한 계산이 가능해진 것이죠. 해리슨의 H4 크로노미터(1761)는 대서양 횡단 시험에서 경도 오차를 1도 이내로 줄이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제 위도와 경도로 알게된 나의 위치를 지도 위 점으로 나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출발점과 도착점을 삼각형의 두 점으로 보고, 나머지 변과 각도를 삼각법으로 구해 항로를 결정했습니다. 또 배의 속력은 매듭이 묶인 밧줄과 모래시계로 측정하고, 나침반으로 방향을 확인한 뒤 하루 동안의 항해 경로를 벡터처럼 더해 계산했습니다. 이 역시 삼각형 계산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하학 문제였습니다.
Fig.4 데카르트 - 기하학과 대수의 만남
이때까지 기하학의 문제는 주로 콤파스와 자를 이용해 도형을 그리고 각을 재며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17세기 초, 데카르트René Descartes 가 등장하며 기하학 문제를 계산으로 풀 수 있게 되었죠. 그는 평면 위에 서로 직각으로 교차하는 두 개의 축을 그려 점의 위치를 숫자로 표현하는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x축과 y축 좌표 개념이 바로 여기서 시작된 것이죠. 이 좌표를 활용하면 원, 직선, 포물선 같은 도형을 방정식으로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반지름이 r인 원은 식 x² + y² = r²로 표현할 수 있고, 직선은 y = 2x + 1 같은 간단한 식으로 나타낼 수 있었죠. 이제 복잡한 도형 문제를 풀기 위해 그림을 직접 그릴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데카르트의 좌표기하학은 단순한 계산상의 편리함을 넘어서 과학혁명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뉴턴이 만유인력 법칙을 세울 때나 갈릴레이가 운동을 연구할 때, 자연 현상을 수학식으로 모델링하고 분석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데카르트의 좌표기하학 덕분이었죠. 데카르트는 기하학을 “그림의 언어”에서 “수식의 언어”로 바꾸었고, 이 혁신 덕분에 자연을 수학으로 설명하는 현대 과학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Fig.5 사영기하학
르네상스 이후, 회화와 지도 제작의 발달은 기하학에 새로운 도전을 던졌습니다. 당시 화가들은 원근법을 이용해 멀리 있는 사물을 작게, 가까운 사물을 크게 표현했는데,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실제로는 절대 만나지 않는 평행선이 그림 속에서는 멀리 가면 한 점에서 만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죠.
유클리드 기하학으로는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평행선은 만나지 않는다는 것이 유클리드 기하학의 기본 전제였기 때문이죠.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의 수학자들과 예술가들은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평행선은 실제로 만나지 않지만, “무한히 멀리 있는 한 점에서 만난다”고 약속하는 겁니다. 이 단순한 발상에서 사영공간이라는 새로운 공간 개념이 탄생했고, 이 공간을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사영기하학(Projective Geometry)입니다.
사영공간에서 중요한 특징은, 평행선뿐 아니라 원, 포물선, 쌍곡선 같은 원뿔곡선들이 서로 변환되더라도 본질적인 성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원을 기울여서 본다고 해서 그것이 포물선이나 쌍곡선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사영공간에서는 이들 모두 같은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다뤄집니다. 이는 사영변환이라는 특별한 변환을 도입했기 때문입니다. 사영변환을 거치면 도형의 크기나 각도, 길이는 바뀔 수 있어도, 변하지 않는 성질이 남게 되는데 그 핵심이 바로 ‘교차비’입니다. 교차비는 직선 위 네 점이 만드는 비율 관계를 말하는데, 이 값은 사영변환을 아무리 적용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즉, 사영기하학은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을 찾는 새로운 기하학의 틀을 마련한 셈입니다. 르네상스 원근법 문제에서 출발한 이 발견은 이후 대수기하학과 복소기하학의 토대를 만들었고, 현대 기하학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Fig.6 비유클리드 기하학
유클리드가 기원전 300년경 완성한 『기하학 원론』은 2000년 넘게 수학의 절대적 권위를 지닌 책이었습니다. 유클리드 기하학은 다음의 5가지 공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중 5번째 공리에 대해 지적이 있어왔죠. 앞의 네 공리에 비해 다섯 번째 공리는 길고 복잡하며 직관적으로도 덜 자명했습니다. 그리고 이 공리는 ‘평행성 성질의 정리’를 증명할 때 반증법의 근거로만 사용되었거든요.
1.
어떤 한 점에서 어떤 다른 한 점으로 선분을 그릴 수 있다.
2.
임의의 선분을 선을 따라 다른 선분으로 연장할 수 있다.
3.
어떤 한 점을 중심으로 하고 이에 대한 거리(반지름)로 하나의 원을 그릴 수 있다.
4.
모든 직각은 서로 같다.
5.
두 직선이 한 직선과 만날 때, 같은 쪽에 있는 내각의 합이 180˚보다 작으면 이 두 직선을 연장할 때 2직각보다 작은 내각을 이루는 쪽에서 반드시 만난다.
그래서 많은 수학자들이 “다른 공리에서 증명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수세기에 걸친 시도는 모두 실패했습니다. 풀었다고 믿은 경우는 대부분은 평행선 공리와 동치인 명제를 증명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영국의 존 플레이페어John Playfair 가 제시한 공리로, “한 점을 지나면서 주어진 직선에 평행한 직선은 오직 하나뿐이다”라는 표현이 오늘날까지 가장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결국 평행선 공리는 다른 공리로부터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성질임이 드러났습니다.
19세기 초, 독일의 수학자 가우스Carl Friedrich Gauß 는 삼각형의 내각 합이 180°보다 작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계산으로 확인했습니다. 이는 곧 유클리드 기하학과 다른 새로운 기하학, 즉 쌍곡기하학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사회는 유클리드 기하학을 절대 진리로 여겼기 때문에, 가우스는 이를 발표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러시아의 로바체프스키Nikolai Ivanovich Lobachevsky (1829) 와 헝가리의 야노시 볼랴이János Bolyai (1832) 가 독립적으로 쌍곡기하학을 발표하죠. 쌍곡기하학에서는 삼각형의 내각 합이 항상 180°보다 작고, 한 직선에 평행한 직선이 여러 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해받지 못했지만, 이후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기초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한편, 구면기하학은 이미 고대 그리스 천문학자들이 별과 지구 구면을 연구하면서 사용한 오래된 전통이 있었습니다. 구 위에서는 직선이 ‘대원(큰 원)’으로 정의되기 때문에, 평행선은 존재하지 않고 삼각형의 내각 합은 항상 180°보다 큽니다. 다만 고대와 중세의 수학자들은 이것을 단순히 “구 위의 특수한 현상”으로 여겼을 뿐, 유클리드 기하학에 맞서는 또 다른 체계로는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19세기 들어 쌍곡기하학이 등장하면서야 구면기하학 역시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한 갈래로 재해석되게 됩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발견은 단순한 수학적 혁신을 넘어, 철학과 과학 전체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수학적 진리가 단일하지 않으며, 공리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체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명확히 드러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Fig.7 리만 / 펠릭스 클라인 기하학
① 리만 - 곡률로 공간을 정의한 새로운 기하학
쌍곡기하학과 구면기하학이 유클리드 기하학을 대체할 수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각각은 별개의 체계였죠. 베른하르트 리만Bernhard Riemann 은 이 둘을 한데 묶어 더 일반적인 공간 이론을 세우고자 했습니다.
리만은 “공간은 점마다 서로 다른 곡률을 가질 수 있다”는 발상을 내놓았습니다. 구면처럼 양의 곡률을 가진 공간, 쌍곡처럼 음의 곡률을 가진 공간, 그리고 평면처럼 곡률이 0인 공간이 모두 하나의 일반 이론 속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죠. 그는 이런 공간을 리만 다양체(Riemannian manifold) 라고 불렀습니다.
리만의 위대한 점은 이런 구체적 예시를 넘어, 공간 자체를 거리(metric)와 곡률(curvature)로 정의할 수 있는 일반적인 틀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이 아이디어는 훗날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1915) 의 수학적 언어가 되어, “공간과 시간이 질량과 에너지에 의해 휘어진다”는 현대 물리학의 혁명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리만의 발표 직후에는 이 발상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리만 기하학은 수학과 물리학 전반에 걸쳐 가장 중요한 도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② 펠릭스 클라인 - 대칭성으로 기하학을 재정의하다
한편, 쌍곡기하학은 가우스, 로바체프스키, 볼랴이가 이론적으로 정립되었지만, 실제로 “종이에 그릴 수 있는 기하학”으로는 완성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1870년 독일의 수학자 펠릭스 클라인Felix Christian Klein 이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는 평면 위에 원을 하나 그리고 그 안쪽만을 새로운 세계라고 규정했습니다. 이 안에서의 직선은 우리가 아는 곧은 선이 아니라, 원과 만나는 현으로 정의했습니다. 또 두 점 사이의 거리를 유클리드식으로 재는 대신, 쌍곡기하학의 규칙에 맞게 새롭게 정의함으로써, 이 모형이 실제 쌍곡기하학의 성질을 모두 만족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쌍곡기하학은 추상적 개념에서 벗어나, 실제로 눈앞에 그릴 수 있는 기하학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클라인의 원판 모형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를 보완한 사람이 푸앵카레Henri Poincaré 였습니다. 푸앵카레는 쌍곡기하학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두 가지 모형을 제시했습니다. 첫째는 원판 모형으로, 원 안에서 직선을 원과 수직으로 만나는 원호로 정의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둘째는 반평면 모형으로, 평면의 절반을 무대로 삼아 직선을 반원이나 수직선으로 표현하는 방법이었죠. 이 두 모형 덕분에 수학자들은 쌍곡기하학을 훨씬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실제 계산과 그림을 통해 연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클라인의 업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하학을 단순히 “공간의 성질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보지 않고, “대칭성의 언어”로 새롭게 정리했습니다. 예를 들어 원이나 구를 생각해보면, 아무리 돌려도 모양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도형을 변환해도 변하지 않는 규칙을 대칭이라고 부릅니다. 클라인은 유클리드 기하학, 구면 기하학, 쌍곡기하학을 각각의 대칭군으로 설명하며, “기하학이란 결국 어떤 대칭이 어떤 공간에 작용하는가로 구분된다”는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1872년에 발표한 클라인 프로그램입니다. 즉, 기하학은 공간의 모양 자체보다는 그 공간이 가진 대칭성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 과정에서 중요한 개념이 리군(Lie group)입니다. 리군은 쉽게 말해 “연속적으로 변하는 대칭의 집합”입니다. 일반적인 “군(group)”이란 규칙에 따라 어떤 대상을 변환했을 때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 변환들의 집합을 말합니다. 하지만 보통의 군은 경우의 수가 딱딱 끊어져 있는 반면, 리군은 이런 변환을 연속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정삼각형의 회전 대칭은 120°, 240°, 360°의 세 가지뿐이지만, 구의 회전 대칭은 어느 각도로든 자유롭게 회전할 수 있기 때문에 무한히 많고 연속적입니다.
클라인은 이런 리군을 기하학의 핵심 무대로 보았습니다. 즉, 기하학이란 단순히 도형의 모양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대칭시켜도 변하지 않는 성질을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것이죠. 이 관점은 이후 물리학과 화학으로 퍼져나가 분자의 대칭성, 결정 구조, 그리고 양자역학과 입자물리학에서 입자의 성질을 분류하는 기본 언어가 되었습니다.
정리하자면, 리만은 “공간을 거리와 곡률로 일반화한 기하학”을 열었고, 클라인은 “기하학을 대칭성의 언어로 재정리한 틀”을 제시했습니다. 리만은 지구 표면의 곡률부터 우주의 구조까지 설명하는 연속적인 공간 이론을 만들었고, 클라인은 대칭군을 통해 기하학을 분류하며 현대 수학의 또 다른 기초를 닦았습니다.
Fig.8 엘리 까르땅
19세기 후반까지 리만의 기하학과 클라인 프로그램이 독자적으로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리만은 “곡률”과 “거리”를, 클라인은 “군”과 “대칭”을 중심으로 기하학을 설명했기 때문이죠. 엘리 까르땅Élie Cartan 은 이 두 언어를 하나로 묶어내며 현대 기하학의 문을 엽니다.
까르땅은 먼저 공간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꿨습니다. 그는 공간을 단순한 “점과 선이 놓인 무대”가 아니라, 거리, 곡률, 방향, 대칭이 서로 얽힌 살아 있는 구조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복잡한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미분방정식을 이용했죠.
까르땅이 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접속(connection)이라는 개념을 만든 것입니다. 접속이란 쉽게 말해 “벡터를 평행하게 옮기는 규칙”인데요. 평평한 책상 위에서는 벡터를 옮겨도 방향이 변하지 않지만, 지구 표면처럼 곡률이 있는 공간에서는 같은 방법으로 옮기더라도 방향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까르땅은 이런 현상을 수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고, 이를 통해 공간의 곡률과 대칭성을 미분방정식으로 계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접근은 물리학에서 혁명적인 도구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전자기력, 약력, 강력 같은 자연의 힘을 다루는 양-밀스 이론(Yang–Mills theory)에서는 힘을 “접속”으로, 힘의 세기를 “곡률”로 해석합니다.
Fig.9 그로덴딕 기하학
까르땅이 기하학에서 정립한 방식 덕분에, 물리학자들은 힘과 입자를 “공간의 대칭을 기술하는 수식”으로 다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까르땅은 리만의 곡률 중심 기하학과 클라인의 대칭성 중심 기하학을 하나로 묶었고, 그 과정에서 현대 물리학의 공통 언어를 만들어냈습니다. 오늘날 전자기학, 양자역학, 입자물리학, 심지어 우주론까지도 까르땅이 만든 기하학적 언어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까르땅의 기하학은 여전히 “먼저 공간을 설정하고, 그 위에서 곡률과 대칭을 기술하는 방식”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20세기 중후반, 알렉산더 그로텐디크Alexander Grothendieck 는 이 접근을 근본부터 뒤집습니다. 그는 “공간을 그리지 말고, 방정식이 정의하는 대수적 구조를 먼저 보라”는 혁명적인 패러다임을 제시했습니다.
그 핵심 개념이 바로 환(ring) 입니다. 예를 들어 원을 정의하는 방정식 x² + y² = 1에서, 이 식을 만족하는 다항식들의 집합(환)을 분석하면 점, 곡률, 함수 관계 같은 기하적 성질을 복원할 수 있습니다. 즉, 공간의 그림을 안 그려도, 방정식 속의 숫자 규칙만으로 공간을 복원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를 체계화하기 위해 그로텐디크는 환을 “공간”으로 변환하는 도구인 스펙트럼(Spec) 을 도입했습니다. 쉽게 말해, 스펙트럼은 방정식을 “프리즘에 통과한 빛”처럼 펼쳐서 공간을 만들어내는 도구이고, 스킴은 이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공간의 이름입니다. 스킴은 실수·복소수·유리수·유한체 등 어떤 수 체계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공간을 정의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 결과, 서로 다른 수 체계에서 전혀 따로 연구해야 했던 문제들이 하나의 통합된 언어로 다뤄지게 되었습니다.
이 통합적 언어 덕분에 20세기 대수기하학은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결국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같은 난제 해결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초끈이론과 양자장론 같은 현대 물리학에서도 고차원 공간과 대칭을 설명하는 공통 언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까르땅이 마련한 “공간 위의 미분방정식 언어”를 넘어, 그로텐디크는 “대수 구조 자체로 공간을 재구성하는 언어”를 제시함으로써 수학과 물리학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 것입니다.
Reference.
•
김영훈. (2018). 공간의 분류와 대칭성 [1]: 기하학의 역사. 고등과학원. URL : https://horizon.kias.re.kr/archives/allarticles/mathematics/공간의+분류와+대칭성1/
•
지즈강. (2011). 수학의 역사. 더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