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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일기 그렇게 쓰는거 아닌데

일기를 쓰면 좋다는 이야기는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당장 구글에 검색해보니 많은 글에서 비슷한 근거를 대며 일기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를 몇 가지 가져오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 자신을 알 수 있다.
글쓰기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정신건강에 좋다.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
다 맞는 말이지만 제가 생각하는 일기 쓰기의 핵심은 다릅니다. 우선 일기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야 합니다. 바로 감정을 위한 일기와 생각을 위한 일기입니다.

 감정을 위한 일기

① 감사일기
감정을 위한 일기에는 ①감사 일기와 ②감정 쏟아 버리기 일기가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감사일기는 감사한 일에 대해서 적는 것입니다. 2017년 발표된 논문 <Feeling Thanks and Saying Thanks: A Randomized Controlled Trial Examining If and How Socially Oriented Gratitude Journals Work>에 의하면 3주간 감사일기를 쓴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우울증 감소를 경험했다고 하죠.
제가 생각하는 감사일기가 작동하는 이유는 관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계는 삶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는 요소인데요. 불행한 삶은 관계가 없거나, 관계가 건강하지 않은 상태인 경우가 많죠. 그런데 감사한 일을 찾기 위해서는 나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 맺은 사람을 찾아야 하고, 그 관계 맺은 사람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② 감정 쏟아 버리기 일기
두 번째 감정 쏟아 버리기 일기는 말 그대로 나쁜 감정을 일기에 쏟아내는 방식의 일기를 말합니다. 감정을 나만의 공간에다 쏟아내기만 해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Disclosure of traumas and psychosomatic processes>라는 논문에서 심리적 외상을 경험하고 난 후 그것을 비밀로 간직한 사람들과 심리적 외상에 대한 내용을 글로 작성한 사람을 비교했습니다. 결과는 비밀로 간직한 사람이 훨씬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산다고 합니다. <Effects of Expressive Writing on Standardized Graduate Entrance Exam Performance and Physical Health Functioning>이라는 논문에는 곧 치르게 될 시험에 대한 감정을 글로 쓴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에 비해 기분이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학업 능력도 향상되었다는 결과가 도출되었죠.
이처럼 감정을 글로 쓰는 것이 유익한 이유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는데요. 첫째는 우리가 부정적이거나 트라우마적 사건에 대해 계속해서 쓰고 쓰면서 경험에 대한 반응이 작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감정에 대한 글을 쓰면서 그 부정적인 감정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 부정적인 경험과 감정을 넓은 인생의 맥락에서 보게 되면서 치유되는 것이라는 의견이죠. 그러니까 인생 전체에서 보면 그 감정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거나, 그 경험이 어쩌면 필요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고 납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효과가 있다는 말이죠.

 인사이트를 위한 일기

여기까지 들으면 뭐 다른 곳에서 말하는 것과 똑같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사실 이제부터 말할 부분이 핵심입니다. 바로 인사이트를 위한 일기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앞선 두 가지 일기를 저는 거의 쓰지 않습니다.)
저는 인사이트가 지식과 경험의 조합이라고 생각합니다. 경험에서만 도출한 인사이트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반면 지식만 있는 인사이트는 전달력이 없죠.
그래서 인사이트를 위한 일기쓰기란 새로운 경험을 하고 일기를 쓰면서 내 지식과, 남의 인사이트 등을 조합해보거나, 책을 읽어 얻은 새로운 지식과 인사이트를 일기를 쓰면서 내 경험과 조합해보는 것이죠. 쓴다는 행위를 하는 순간에는 새로운 정보와 경험이 차단되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내 안에 있는 정보와 지식을 조합하게 되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일기 쓰기의 기능에 대한 다른 주장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 자신을 알 수 있다’는 사실 인사이트를 위한 일기와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무슨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것은 내 가치관을 명확하게 들어내는 것이니까죠.
‘글쓰기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일기 쓰기의 기능이라기보다는 부산물로 보는 것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그마저도 글을 잘 쓰기 위해서 의식하며 일기를 쓰지 않으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을 할 때는 ‘의도적인’ 반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요약하자면,

일기를 쓰는 이유는 크게 감정적 안정감과 인사이트를 얻기 위함이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지식과 정보를 조합해 인사이트를 얻는 것이다.
그외는 일기 쓰기의 부가적인 기능이다. (ex. 글쓰기 능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