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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1 텍스투라 | 비싼 양피지를 최대한으로 쓰자

중세 시대의 책은 수도원 필경사들이 손으로 베껴 쓰는 방식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역마다 서로 다른 필사 전통과 글씨체가 형성되었는데, 북유럽에서는 획이 두껍고 각이 진 블랙레터체가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블랙레터는 글자 간 간격이 좁고 획의 밀도가 높아, 값비싼 양피지를 절약하기에 실용적인 서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서와 신학서에 걸맞은 권위와 전통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서체이기도 했죠.
이 블랙레터 계열 가운데 대표적인 형태가 텍스투라체Textura 였습니다. 텍스투라는 수직적인 획이 반복되며 직조된 천처럼 보이는 것이 특징으로, 글줄 전체가 균질한 검은 면을 이루는 강한 시각적 리듬을 만들어냈습니다.
15세기 중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가 금속 활자를 이용한 인쇄술을 완성했을 때, 그는 기존 필사본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텍스투라체를 기반으로 삼았습니다.

Fig.2 로만체 | 고대 로마 문화 부흥을 위하여

15세기 북유럽에서는 블랙레터체가 지배적이었지만, 유럽 남부, 특히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들은 블랙레터를 중세의 유산으로 인식하며 거리를 두었습니다. 이들은 고대 로마의 문화와 언어를 이상적인 모델로 삼아 새로운 서체를 제작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1470년경 베네치아의 니콜라스 젠슨Nicolas Jenson 이 고대 로마 비문의 비례감과 인문주의 필사체의 부드러운 흐름을 결합한 서체를 개발합니다. 그의 서체는 촘촘한 검은 밀도를 형성하던 블랙레터와 달리, 획의 굵기 대비가 비교적 명확하고 글자 내부의 공간이 넓어 읽기 쉬웠습니다.

Fig.3 벰보체 | 고전 읽기 좋은 서체

15세기 말 베네치아는 지중해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였기 때문에 대량 인쇄와 고급 출판을 감당하며 유럽 인쇄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알두스 마누티우스Aldus Manutius 의 알디네 인쇄소Aldine Press 가 있었는데요. 알두스는 고전 텍스트를 정확하고 아름다운 형태로 보급하는 것을 목표로 했고, 이를 위해 고전 텍스트를 읽기에 좋은 서체를 만들어내고자 했습니다.
1495년에 출판된 피에트로 벰보Pietro Bembo 의 저서 『De Aetna』는 이러한 알딘 인쇄소의 출판 철학을 잘 보여주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에 사용된 로만 활자는 프란체스코 그리포가 디자인한 것으로, 오늘날 벰보체라 불리는 서체의 기원이 됩니다.
벰보체는 니콜라스 젠슨 계열의 로만체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보다 균형 잡힌 비례와 절제된 형태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획의 대비는 과하지 않았고, 글자 내부의 공간은 넉넉해 긴 문장을 읽기에도 안정적이었습니다.

Fig.4 가라몬드체 | 이것이 프랑스의 로만체

15세기 베네치아에서 확립된 로만체는 유럽 인쇄계에서 사실상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각 지역은 로만체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언어와 출판 환경에 맞게 재해석해 사용했죠. 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서체가 프랑스의 클로드 가라몽Claude Garamond 이 제작한 가라몬드체였습니다.
가라몬드체는 베네치아 로만체를 프랑스적 감각에 맞게 정제한 활자였습니다. 그는 기존 로만체의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비례와 리듬을 한층 안정적으로 다듬어, 보다 규범적인 읽기용 서체를 만들어냈죠. 특히 획의 대비가 과하지 않고, 글자 내부 공간이 안정적으로 열려 있어 긴 문장을 읽기에 적합했습니다. 이러한 가라몬드체의 특징은 지식의 정확한 전달이 중요했던 16세기 출판 환경과 맞아 떨어졌고, 가라몬드체는 고전, 신학서, 학술서를 중심으로 폭넓게 사용되었습니다.
가라몽의 또 다른 중요한 공헌은 로만체와 조화를 이루는 이탤릭체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는 점입니다. 이전에도 기울어진 활자는 존재했지만, 그는 대문자와 소문자, 로만체와 이탤릭체가 하나의 통일된 활자 체계 안에서 함께 작동하도록 설계했습니다. 이를 통해 인쇄업자들은 본문, 강조, 주석을 하나의 미적 질서 안에서 처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구성은 이후 서체 디자인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6세기 가라몽을 통해 로만체는 비례와 가독성 면에서 하나의 이상적 기준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가라몽이 사망한 이후 그의 펀치와 활자가 여러 지역의 인쇄업자들에게 흩어지며 반복적인 복제와 재조각을 거쳤고, 그 결과 형태는 점차 불균질해졌습니다. 이로 인해 ‘가라몬드’라는 이름 아래 사용된 서체들은 인쇄소마다 서로 다른 모습을 띠게 되었습니다.

Fig.5 캐슬론 | 열약한 영국 환경에 맞는 로만체

16~17세기 영국은 강력한 인쇄 검열 체제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 인쇄소의 수와 출판 활동, 활자 주조업까지 엄격히 통제되었죠. 그 결과 영국 내부에서는 활자 제작 기술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인쇄업자들은 고급 금속 활자를 네덜란드에서 수입해 사용했죠.
그러나 수입 활자는 공급이 불안정했고 장기간 유지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영국의 인쇄 환경은 종이 품질과 잉크 상태가 일정하지 않았는데요. 이렇게 취약한 인쇄 환경에서는 섬세한 로만체가 쉽게 뭉개지거나 마모되어 형태를 유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18세기 초 윌리엄 캐슬론William Caslon 은 취약한 영국 인쇄 환경에 맞게 로만체를 재구성합니다. 캐슬론이 만든 서체는 획이 굵고 세리프가 두툼해 반복 인쇄와 마모 속에서도 형태가 쉽게 무너지지 않았죠. 이러한 특징 덕분에 캐슬론체는 신뢰성이 요구되는 인쇄물에서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18세기 중반에 이르러 캐슬론체는 영국 인쇄계의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 잡았고, 그 영향은 북미 식민지로까지 이어져 미국 독립선언서에도 캐슬론체가 사용되었죠.

Fig.6 바스커빌 | 인쇄 공정의 우수함을 드러내는 서체

캐슬론체를 통해 로만체는 대량 인쇄에 견딜 수 있는 안정적인 활자 형태를 확보했지만, 인쇄된 페이지 전체는 여전히 거칠고 불균질했습니다. 활자는 물리적으로 견고했으나, 종이의 표면 상태와 잉크 농도, 압인의 정밀도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아 페이지의 명도와 윤곽은 고르게 정리되지 않았죠.
이 문제를 해결한 인물이 존 바스커빌John Baskerville 이었습니다. 바스커빌은 먼저 인쇄 공정 자체를 개선했습니다. 표면이 매끄럽고 균질한 종이를 개발했고, 깊고 균일한 검은색을 구현할 수 있도록 잉크 배합을 조정했으며, 활자가 종이에 정확히 전달되도록 압인 방식을 정밀하게 다듬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공정의 정밀함이 시각적으로 또렷하게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 새로운 서체, 바스커빌체를 설계했습니다. 바스커빌체는 획의 굵기 대비가 이전보다 뚜렷하고, 글자의 무게 중심이 수직으로 정렬되도록 구성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페이지 전체에는 규칙적인 세로 리듬이 형성되었고, 인쇄 결과는 이전보다 훨씬 차분하고 통제된 인상을 띠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바스커빌체는 인쇄의 통제감을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필사체적 흔적을 줄이고 기계적 정확성을 강조했습니다.
바스커빌체는 동시대에 지나치게 날카롭고 차갑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그의 시도는 곧 유럽 대륙으로 전파되어 이후 모던 로만체로 이어지는 근대적 서체 전환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Fig.7 디돈체, 보도니체 | 인쇄 수준의 극단적 과시

존 바스커빌의 인쇄 기술 혁신은 영국을 넘어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전해졌고, 이곳에서도 서체는 인쇄 기술이 도달한 수준을 과시하듯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방향으로 발전했습니다.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 프랑스의 디도 가문과 이탈리아의 잠바티스타 보도니Giambattista Bodoni 였습니다. 이들이 만든 서체는 획의 굵기 대비가 매우 크고, 글자의 굵기 변화가 좌우로 흔들리지 않고 수직 방향으로 정리되었습니다. 세리프는 얇고 날카롭게 처리되었으며, 글자의 구조는 기하학적으로 정돈되었습니다. 이는 이전의 거친 종이와 번지는 잉크 환경에서는 성립할 수 없었던 특징이었습니다.
디도·보도니 계열 서체는 긴 본문용으로는 부담스럽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제목, 표제지, 공식 문서, 권위 있는 출판물에서는 강한 존재감을 발휘했습니다. 서체 자체가 인쇄물의 격과 위상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죠.

Fig.8 안티크 | 대량 고속 인쇄를 버틸 서체

디도·보도니가 구현한 극단적인 정밀함은 제한된 소량 고급 인쇄 환경에서만 유지될 수 있는 미학이었습니다. 하지만 19세기 산업혁명으로 증기기관 인쇄기가 등장하고 대량·고속 인쇄가 본격화되자 이 환경에 맞는 새로운 서체가 필요해졌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1815년 영국의 빈센트 피긴스Vincent Figgins 는 안티크라 불리는 새로운 서체를 제작했습니다.
안티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세리프의 두께였습니다. 이전 로만체에서 세리프는 획보다 얇고 보조적인 요소였지만, 안티크에서는 세리프가 글자 몸통과 거의 같은 두께로 결합되었습니다. 획의 굵기 대비는 극히 낮아졌고, 전체 구조는 단단하고 무거운 인상을 주었습니다. 이는 거친 종이와 빠른 인쇄 속도 속에서도 형태를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었죠.
이 서체는 장문의 본문을 읽기 위한 용도라기보다는, 포스터와 광고, 상업 인쇄물에서 강한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멀리서도 눈에 띄었고, 잉크가 번지거나 압인이 불균질해도 글자의 윤곽이 쉽게 무너지지 않았죠. 이후 안티크는 다양한 이집션과 슬랩 세리프 계열 서체로 확산되며, 19세기 산업 인쇄 전반에서 ‘물리적으로 견디는 글자’의 기준을 만들어갔습니다.

Fig.9 클라렌돈체 | 안티크의 과잉을 다듬다

19세기 초, 산업 인쇄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안티크 서체처럼 글자 몸통만한 두께의 세리프를 가진 서체들이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이 서체들은 인상이 지나치게 투박해 장문의 읽기나 정제된 인쇄물에는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1845년, 영국의 활자 주조업자 로버트 베슬리Robert Besley 에 의해 클라렌돈체가 등장합니다. 클라렌돈체는 두꺼운 세리프를 유지하면서도, 세리프와 글자 몸통의 연결을 보다 부드럽게 다듬고 전체 비례를 안정적으로 조정한 서체였습니다. 세리프는 여전히 두껍지만 과도하게 돌출되지 않았고, 획의 대비도 이전보다 정돈되었습니다.
클라렌돈체는 광고와 표제뿐 아니라, 비교적 긴 텍스트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범용성을 확보하며 19세기 중반 이후 영국과 유럽 전반에서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Fig.10 센추리체 | 눈이 편안한 서체

19세기 말에 이르러 활자는 대량 생산과 고속 인쇄에 충분히 적응했고 인쇄물은 신문, 교과서, 잡지 등 일상적인 읽기 매체로 확산되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오래 보아도 편안한 서체에 대한 니즈가 생겨났죠.
이러한 환경 속에서 탄생한 서체가 1894년 미국의 활자 디자이너 린 보이드 벤턴Linn Boyd Benton 이 제작한 센추리체입니다. 센추리체는 대량 인쇄되는 교과서와 신문을 염두에 두고, 장시간 읽기에서의 가독성을 핵심 목표로 삼아 설계되었습니다.
벤턴은 글자의 형태를 추상적으로 다루기보다, 인쇄된 텍스트를 실제로 읽는 조건을 기준으로 글자를 설계했습니다. 그는 소문자가 크게 보이도록 비례를 조정하고, 획의 굵기와 자간·행간의 관계를 정리했으며, 그 결과 센추리체는 과하지 않은 획 대비와 안정적으로 처리된 세리프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는 긴 문장을 읽을 때 눈의 피로를 줄이기 위한 의도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센추리체는 20세기 초 미국 인쇄 문화 전반에서 표준적인 읽기용 서체로 자리 잡게됩니다.

Fig.11 타임스 뉴 로만체 | 신문을 위한 서체

20세기 초에 이르러 신문은 매일 빠르게 대량 생산되어야 했으며, 제한된 지면 안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담아야 했습니다. 이에 1931년 영국 신문 더 타임스The Times 는 스탠리 모리슨Stanley Morison 에게 가독성, 공간 효율성, 인쇄 안정성을 가진 서체의 설계를 의뢰합니다. 모리슨은 빅터 라든트Victor Lardent 와 협업해 타임스 뉴 로만체를 완성했습니다.
타임스 뉴 로만체는 좁은 지면에 더 많은 정보를 담되, 읽기 어려워지지 않도록 설계된 서체였습니다. 작은 크기에서도 안정적인 가독성을 확보하기 위해 획 대비는 비교적 분명하지만 과하지 않게 조절되었고, 글자의 가로폭은 줄여 지면 효율을 높였습니다. 또한 자간과 행간은 촘촘하지만 질서를 잃지 않도록 조정되었죠. 세리프는 날카롭되 지나치게 얇지 않게 처리되어, 고속 인쇄와 잉크 번짐 속에서도 형태가 유지되었습니다.
타임스 뉴 로만체는 「타임스」 신문에 도입된 이후 빠르게 성공을 거두었고, 공문서, 보고서, 학술 출판 등 다양한 영역에서 표준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Fig.12 프랭클린 고딕 | 산세리프를 주류로

20세기 초, 신문과 광고는 점점 더 많은 정보를 더 빠르게 전달해야 했고, 인쇄물은 책과 신문을 넘어 도시 공간 곳곳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거리에는 포스터와 간판, 광고물이 넘쳐났고, 이 환경에서 정보는 읽히기 전에 먼저 눈에 띄어야 했습니다. 서체의 역할 역시 ‘얼마나 오래 읽히는가’보다 ‘얼마나 빠르게 인식되는가’로 이동합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1902년, 센추리체를 설계했던 모리스 풀러 벤턴Morris Fuller Benton 에 의해 프랭클린 고딕체가 만들어집니다. 그는 이미 대중 인쇄 환경에서의 가독성 문제를 경험한 인물이었고, 이를 도시의 정보 환경으로 확장하고자 했습니다.
프랭클린 고딕체는 세리프를 제거했지만 가볍거나 미니멀한 인상을 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굵고 단단한 획, 낮은 대비, 넓은 글자 폭을 통해 강한 존재감을 확보했죠. 이는 19세기 동안 광고와 포스터에서 사용되던 슬랩 세리프—글자 몸통과 거의 같은 두께의 굵은 세리프를 지닌 서체—가 맡아왔던 ‘눈에 띄는 글자’의 역할을 산세리프로 옮겨온 선택이었습니다. 프랭클린 고딕은 멀리서도 즉각적으로 인식되도록 설계되어, 도시의 시각적 소음 속에서도 메시지를 놓치지 않게 했습니다.
그 결과 프랭클린 고딕체는 신문 헤드라인, 광고 제목, 공공 안내문 등에서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타이포그래피의 역사에서 프랭클린 고딕은 산세리프가 실험적 선택을 넘어, 도시와 대중 매체의 기본 언어로 편입되는 출발점으로 평가됩니다.

Fig.13 존스턴 | 런던 지하철을 위한 서체

20세기 초 런던의 지하철 노선은 빠르게 확장되었지만, 역마다 사용하는 표지판과 글자는 통일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노선도와 안내판, 포스터에는 서로 다른 서체가 뒤섞여 있었고, 이는 단순한 미관의 문제가 아니라 대도시 교통 시스템에서 정보 전달의 혼란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16년, 런던 지하철은 에드워드 존스턴Edward Johnston 에게 전용 서체의 설계를 의뢰합니다. 이렇게 탄생한 존스턴 서체는 특정 인쇄물을 위한 글자가 아니라, 런던 지하철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시각 언어를 목표로 만들어졌습니다.
존스턴은 산세리프를 선택했지만, 푸투라처럼 기하학적 형태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이지는 않았습니다. 중세 필사본과 로마 비문을 연구해 온 그는 글자를 기계적 도형이 아니라 손으로 그려지는 구조로 이해했고, 그 결과 세리프가 제거된 형태 안에서도 인간적인 리듬과 필기의 논리가 유지되었습니다. 완전한 원이 아닌 O, 단층 구조의 a와 g, 넉넉한 자간은 모두 복잡한 환경에서도 글자를 빠르게 인식하고 안정적으로 읽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존스턴 서체의 진정한 중요성은 형태 그 자체보다, 그것이 사용된 방식에 있습니다. 이 서체는 역사상 처음으로 특정 기관을 위해 설계되었고, 단기적인 인쇄물이 아니라 표지판, 노선도, 포스터, 인쇄물 전반에 장기적으로 일관되게 적용되었습니다. 존스턴 이전에 서체가 인쇄물마다 선택되는 요소였다면, 존스턴 이후 서체는 조직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됩니다.

Fig.14 푸투라 | 과거 필사 전통을 벗어나자

제 1차 세계대전으로 사람들은 기존 질서와 가치관에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예술과 디자인은 더 이상 과거의 형식을 반복할 수 없었고,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형태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죠.
1927년 독일의 디자이너 파울 레너Paul Renner 는 이러한 가치관을 담은 푸투라 서체를 발표합니다. 푸투라는 철저히 기하학적 원리에 기반해 만들어졌는데요. 이는 과거의 필사 흔적이나 역사적 관습을 배제하고 기능주의적 사고, 기술에 대한 신뢰, 그리고 새로운 사회를 향한 낙관을 반영한 것이었죠. 이러한 접근은 바우하우스와 당시 독일 모더니즘의 흐름과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하지만 푸투라의 지나치게 기하학적인 구조는 장시간 읽기에서는 오히려 부담을 주었고, 글자의 리듬은 인간의 필기 습관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투라는 포스터, 표어, 간판, 기관 로고 등에서 강한 시각적 힘을 발휘했고, 독일을 넘어 유럽과 미국의 인쇄물과 그래픽 디자인에 사용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푸투라는 근대성과 합리성을 상징하는 시각 언어로 자리 잡게 되죠.
이 점에서 푸투라는 이후 등장하는 수많은 기하학적 산세리프와 모더니즘 디자인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Fig.15 헬베티카 | 중립에, 중립에 의한, 중립을 위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사회는 안정과 질서, 그리고 정치·문화적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립성을 필요로 했습니다. 디자인 역시 개인적 표현보다는, 어디서나 동일하게 작동하는 보편적 언어를 요구받게 됩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 속에서 1957년, 스위스의 하스 주조소Haas Type Foundry 에서 막스 미딩거Max Miedinger 가 에두아르트 호프만Eduard Hoffmann 의 기획 아래 헬베티카를 설계합니다. 헬베티카는 개성을 드러내기보다, 어떤 맥락에서도 안정적으로 기능하는 산세리프를 목표로 만들어진 서체였습니다.
헬베티카의 형태는 극도로 절제되어 있습니다. 획의 대비는 거의 없고, 글자의 구조는 단순하며, 획 끝은 직선적으로 처리되었습니다. 자폭과 자간은 촘촘하지만 균형을 잃지 않도록 조정되어, 전체적으로 단단하고 균질한 인상을 줍니다. 이 서체는 시선이 글자에 머물지 않고, 메시지 자체로 곧바로 이동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러한 성격 덕분에 헬베티카는 포스터, 공공 표지, 기업 아이덴티티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용되며, 특정 문화나 언어에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 시각 언어’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더불어 금속 활자에서 사진 식자, 디지털 타입으로 이어지는 기술 변화 속에서도 무리 없이 적응하며, 1960~70년대에는 다국적 기업과 정부 기관, 국제 공항과 교통 시스템에서 사실상의 표준 서체로 자리 잡게 됩니다.

Fig.16 푸르티거 | 공항에서 잘 보이는 서체

1970년대 유럽은 전후 경제 성장과 항공 여행의 대중화로 대규모 공공 공간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시기였습니다. 사람들은 공항과 고속도로, 대학 캠퍼스처럼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공간 속에서 길을 찾아야 했고, 정보는 멈춰 있는 독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에게 전달되어야 했습니다. 글자는 멀리서도 빠르고 오류 없이 읽혀야 했죠.
기존의 서체들은 이러한 요구를 충분히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헬베티카는 인쇄물과 그래픽 디자인에서 중립성과 질서를 목표로 설계된 서체였기에, 복잡하고 동적인 공공 공간에서는 형태적 단서가 부족했습니다. 전통적인 로마체 역시 다양한 거리와 각도, 불균일한 조명 환경을 전제로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샤를르 드 골 국제공항 당국은 공항 전체의 안내 표지 시스템을 새롭게 설계하기로 결정했고, 이 작업을 스위스의 아드리안 프루티거Adrian Frutiger 에게 의뢰합니다.
프루티거 서체는 소문자의 키를 크게 설정하고 내부 공간을 넓혀 멀리서도 형태를 빠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했으며, 획의 굵기 변화를 부드럽게 처리해 생동감을 주었습니다. I와 l, 6과 9처럼 혼동되기 쉬운 문자들은 명확히 구분되었고, 얇은 체부터 굵은 체까지 하나의 완성된 가족으로 설계되어 공항 안내 표지의 정보 위계를 시각적으로 정리할 수 있게 했습니다.
샤를르 드 골 공항에서의 성공 이후, 프루티거의 설계 원칙은 공공 정보 디자인의 전형이 되었고, 유럽의 교통 표지판과 일본의 지하철 노선도, 대학과 병원의 안내 시스템에까지 널리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Fig.17 아리얼 | 헬베티카 대체 서체

1980년대 초, IBM은 자사의 레이저 프린터에 사용할 산세리프 서체가 필요했지만, 당시 사실상의 표준이던 헬베티카는 라이선스 비용이 높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IBM은 헬베티카와 호환되면서도 독자적으로 배포할 수 있는 서체를 의뢰했고, 1982년 영국 모노타입Monotype 에서 로빈 니콜라스Robin Nicholas 와 패트리샤 손더스Patricia Saunders 가 아리얼을 설계합니다.
아리얼은 의도적으로 헬베티카와 거의 동일한 자폭과 메트릭을 갖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줄바꿈과 문단 길이, 페이지 레이아웃이 그대로 유지되도록 하기 위한 선택이었죠. 다만 세부 형태에서는 헬베티카보다 획의 끝이 둥글고, 구조적으로는 손글씨의 논리를 따른 산세리프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1990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 운영체제의 기본 서체로 아리얼을 채택하면서 이 서체는 전 세계 수억 명의 사용자에게 ‘기본 글자’가 됩니다. 이로써 아리얼은 디자인적 선택의 결과라기보다, 운영체제와 호환성에 의해 형성된 사실상의 표준 서체로 자리 잡게 됩니다.

Fig.18 베르다나 | 인터넷용 서체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보급되며 서체의 전제 자체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기존의 컴퓨터 문서가 인쇄를 최종 목표로 했다면, 웹에서는 화면이 곧 최종 매체였습니다.
당시 작은 크기의 화면 글자는 비트맵 폰트를 통해 문제를 우회해 해결하고 있었습니다. 비트맵 폰트는 글자를 윤곽선으로 축소하는 대신, 특정 크기에 맞춘 픽셀 형태를 미리 만들어 두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는 저해상도 화면에서 선명도를 유지하기 위한 현실적인 선택이었지만, 웹처럼 다양한 환경에서 동일한 글자를 보여줘야 하는 매체에서는 안정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한계 속에서 1996년, 마이크로소프트는 매튜 카터Matthew Carter 에게 저해상도 화면에서 직접 읽히는 서체의 설계를 의뢰했고, 그 결과물이 베르다나였습니다. 베르다나는 소문자가 크게 보이도록 비례를 조정하고, 글자 내부 공간을 넉넉히 확보해 작은 크기에서도 형태가 무너지지 않도록 설계되었습니다. I와 l, 1처럼 혼동되기 쉬운 문자들은 명확히 구분되었고, a, e, s 같은 글자들도 작은 크기에서 구조가 닫히지 않도록 조정되었습니다. 이 서체는 운영체제와 웹 브라우저에 기본 탑재되며 빠르게 확산되었고, ‘웹에서 읽히는 글자’의 기준을 사실상 규정하게 됩니다.

Fig.19 샌프란시스코 | 모든 기기에서 잘 보이는 서체

2010년대에 들어 스마트폰, 태블릿, 스마트워치 등 다양한 디지털 기기가 등장하면서, 하나의 글자가 수많은 크기와 해상도에서 읽혀야 하는 시대가 도래합니다. 이에 대한 애플의 해답이 2015년 공개된 샌프란시스코 서체였습니다.
샌프란시스코는 고정된 형태의 서체가 아니라, 사용 환경에 따라 구조가 달라지는 시스템입니다. 화면이 큰 기기를 위한 SF Pro와 작은 화면을 위한 SF Compact가 자동으로 전환되며, 글자 크기에 따라 형태가 미세하게 조정되는 옵티컬 사이즈 개념이 적용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작은 크기에서는 더 단순하고 굵은 형태가, 큰 크기에서는 보다 정제된 형태가 사용되며, 이러한 변화는 사용자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루어집니다. 샌프란시스코는 서체가 더 이상 독립적인 파일이 아니라 운영체제의 렌더링 엔진과 함께 작동하는 구성 요소임을 보여줍니다.

Reference.

로빈 도드. (2013). 타이포그라피의 탄생. 홍디자인
김현미. (2022). 좋은 디자인을 만드는 33가지 서체 이야기. 세미클론
사이먼 가필드. (2017). 당신이 찾는 서체가 없네요. 안그라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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