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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만든 사람 노벨평화상 줘라

에어컨디셔너 여름에 실내 공기의 온도, 습도를 조절하는 장치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 목차 -

Fig.1 에어컨의 기원도 또집트

이집트는 나일강을 중심으로 한 밀집된 도시형 정착지와 중앙집권적 관개 농업이 발달해 있었고, 이로 인해 여름철 내부 온도 조절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습니다. 벽돌이나 석재로 지어진 구조물 내부에서의 체류 시간이 길어지자, 사람들은 꺾은 갈대를 물에 적셔 창문에 걸어 두는 방식으로 실내를 시원하게 만들었죠. 이는 단순한 방식처럼 보이지만, 이 원리는 에어컨의 핵심인 기화열 개념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바람이 불면서 갈대의 물을 증발시키고, 증발 과정에서 주변의 열을 흡수해 공기를 냉각하는 것이죠.
반면 약 3천 년 전 고대 페르시아 지역은 고원 지대와 사막 지형이 공존하는 건조한 기후였으며, 풍부한 태양 복사량과 극단적인 일교차가 특징이었습니다. 이 지역은 강력한 도시 국가들을 중심으로 상업과 행정이 집중되면서, 궁전·시장·목욕탕·주거지 등 다용도 건축물에 대한 공기 조절 수요가 있었습니다. 이런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 고대 페르시아 지역의 도시들에서는 윈드캐처Windcatcher 라는 구조물을 통해 자연 바람을 실내로 유도하고, 내부 공기의 대류를 유도해 시원함을 얻었습니다. 윈드캐처는 물과 결합되기도 했고, 지하 통로를 통해 찬 공기를 유입하기도 했죠.

Fig.2 하라는 말라리아 치료는 안하고..!

말라리아Malaria는 유럽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토병이었습니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사람들은 이 병의 원인을 공기 중의 악취나 습기에서 찾았죠. 말라리아라는 단어가 ‘나쁜 공기Mala Aria’를 뜻하는 이탈리아어에서 유래한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17~18세기에 들어서면서 유럽에서는 도시 정비와 농지 개간, 배수 시설의 정비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 습지가 줄어들며 말라리아 발생률도 점차 감소하게 됩니다. 하지만 유럽인들이 신대륙, 특히 고온다습한 미국 남부 해안 지역으로 대거 이주하면서 말라리아와 다시 마주하게 되었죠.
말라리아 위협이 일상적이었던 미국, 플로리다에서 병원을 운영하던 존 고리John B. Gorrie 는 찬 기후에서는 말라리아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경험 사실을 통해 찬 공기를 만들어내면 말라리아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이 믿음에 입각해 고리는 냉각 장치를 구상합니다.
당시는 이미 열을 기계 에너지로 변환하는 증기기관이 널리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고리는 이 증기기관을 이용해 기계 에너지를 다시 냉각 에너지로 바꾸는 발상을 합니다. 그가 만든 장치는 증기기관으로 피스톤을 움직여 실린더 내의 소금물의 압력을 낮추고, 이를 통해 실내 온도를 낮추는 방식이었죠. 실제로 이 장치는 물을 얼릴 정도로 성능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곧 말라리아는 ‘나쁜 공기’가 아니라 모기를 매개로 하는 감염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고리의 발명품의 취지는 무색해졌습니다. 이에 존 고리는 의사를 그만두고 미국 최초의 냉각 기술 특허를 얻어 얼음 사업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가 만든 인공 얼음은 자연에서 채취한 얼음보다 훨씬 비쌌고, 얼음을 대량 운송하는 인프라도 갖춰지지 않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지 못해 실패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 고리의 발명은 열역학 제2법칙과 압축기술, 냉매 순환 시스템의 기초 개념들을 실험적으로 구현한 사례였고, 증기기관이라는 산업혁명기의 기술이 냉방이라는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응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의미가 있었습니다.

Fig.3 생각보다 더 대단한 윌리스 캐리어 님

윌리스 캐리어가 만든 ‘공기 처리 장치’ Carrier Corporation
윌리스 캐리어가 만든 ‘공기 처리 장치’ Carrier Corporation
윌리스 캐리어
20세기 초반 미국은 산업혁명 이후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던 시기였습니다. 농촌 인구가 뉴욕, 시카고, 필라델피아와 같은 대도시로 집중되었고, 철도망 확장과 함께 대규모 이민자 유입이 이어졌죠. 이러한 인구 집중은 대중을 상대로 한 출판물과 광고 산업의 성장을 직접적으로 이끌었습니다.
특히 1890년대 이후 등장한 '황색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은 선정적인 기사로 대중의 주목을 끌었으며, 신문·잡지 구독률을 급격히 끌어올렸죠. 동시에 공립학교 교육 확대와 문맹률 감소는 독서 가능 인구층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습니다.
이러한 조건 아래에서 신문과 잡지는 정보 전달 매체를 넘어 강력한 광고 플랫폼으로 변모했습니다. 대기업들은 제품의 브랜드화에 막대한 투자를 시작했고, 대중 매체를 통한 광고는 소비자 행동을 좌우하는 핵심 전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쇄물의 품질이 불안정하면 브랜드 이미지에 직접적인 타격이 가는 만큼, 색상의 균일성과 용지 안정성 확보는 곧 기업 신뢰를 위한 기술적 요건이 되었죠.
하지만 20세기 초까지 인쇄소들은 인쇄물의 품질을 균일하게 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습한 날에는 용지가 늘어나고 잉크가 잘 마르지 않았고, 건조한 날에는 용지가 줄어들어 인쇄를 균일하게 하기 힘들었거든요. 1902년, 뉴욕의 한 인쇄소도 골치를 앓다가 버팔로 포지 컴퍼니Buffalo Forge Company 에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의뢰합니다. 의뢰를 받은 버팔로 포지 컴퍼니는 온도와 습도를 동시에 조절할 수 있는 기계를 제작해야 했죠. 이 프로젝트의 담당자가 바로 윌리스 캐리어Willis Carrier 였고, 캐리어는 ‘공기 처리 장치’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에어컨이라고 부르는 장치를 발명합니다.
기존에도 실내를 시원하게 하는 장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원해지면 습도도 같이 높아지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윌리스 캐리어가 발명한 장치는 냉방과 제습이 동시에 가능했죠. 심지어 난방과 가습도 가능했어요. 이걸 가능하게 한 그의 아이디어도 혁신적이었습니다. 윌리스 캐리어의 ‘공기 처리 장치’는 분사한 물 사이로 공기를 통과시켜 공기의 이슬점을 제어하는 원리였습니다. 그러니까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서 오히려 물을 이용하는 것이었죠.
그가 설계한 시스템은 물을 분사한 공간을 공기가 통과하도록 하여, 공기의 이슬점을 제어하는 방식이었다. 즉, 물을 사용해 오히려 공기 중의 수분을 제거한 것이다. 이 방식은 냉방과 제습을 동시에 가능하게 만들었고, 더 나아가 난방·가습 기능까지 포함하는 다기능 공기 조절 시스템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를 토대로 캐리어는 상대 습도, 절대 습도 및 이슬점 등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고, 이 연구는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죠. 이 ‘공기 처리 장치’로 캐리어는 1906년 특허를 취득하고 2년 후에 회사 동료들과 캐리어 에어 컨디셔닝 컴퍼니 오브 아메리카Carrier Air Conditioning Company of America 를 설립합니다.
참고로 캐리어가 만든 장치를 에어컨이라고 하지 않고 굳이 ‘공기 처리 장치’라고 지칭한 이유가 있습니다. 에어컨이라는 명칭은 캐리어가 붙인 것이 아니기 때문인데요. 에어컨(정확히는 에어컨디셔너)이라는 이름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스튜어트 크래이머Stuart Cramer 입니다. 섬유 공장 엔지니어였던 그는 1906년 습도와 환기를 제어하는 장치를 개발하는데 이것을 에어컨이라 불렀죠

Fig.4 이제 집에도 에어컨 설치됩니다! 1.5억만 내세요

캐리어 회사의 초기 극장용 에어컨
1928년 선보인 상업용 소형 에어컨
캐리어의 ‘공기 처리 장치’는 처음에는 제지·인쇄·섬유 산업에서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1920년대 미국 디트로이트 허드슨 백화점과 티볼리 극장에 설치되면서, 고객 경험을 위한 쾌적한 환경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되죠. 에어컨은 더 이상 산업의 문제 해결 기술이 아닌, 소비자 만족을 위한 생활기술로 변모하게 됩니다. 1929년에는 백악관에도 에어컨이 진출하면서 정부 기관과 사무실에 에어컨이 보급되기 시작합니다.
1933년 캐리어 회사에서 선보인 가정용 에어컨
최초의 가정용 에어컨은 1914년 찰스 길버트 게이츠Charles G. Gates 자택에 설치되었으나, 크기(높이 약 2m, 너비 1.8m, 길이 6m)와 비용 문제로 상용화되지는 않았습니다. 심지어 게이트도 1913년에 사망하면서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창문 설치형 에어컨 특허
교외에 값싼 조립식 주택을 대량으로 판매한 윌리엄 레빗
이후 1931년 슐츠와 셔면이 개발한 창문 설치형 에어컨이 등장하며, 기술은 점점 소형화되고 상업화되기 시작한다.하지만 약 12~60만 달러로 아직 대중화되기에는 무리가 있는 가격이었죠.
에어컨이 실제로 대중화된 건 2차 세계 대전 이후 입니다. 1955년 미국의 건설업자 윌리엄 레빗William Levitt 의 조립식 주택에 기본 옵션으로 에어컨이 포함되면서, 냉방은 중산층 생활의 표준 인프라로 자리 잡았죠.

Fig.5 우리나라 최초의 에어컨은 부처님 전용

일제강점기 재조립 중인 석굴암의 모습
한국에서의 에어컨 도입은 다소 특수한 목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국내에서 최초로 에어컨을 사용한 곳은 석굴암입니다. 석굴암은 원래 환기구를 통해 공기를 유통하면서 내부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했습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석굴암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에서 시멘트로 공사하면서 결로 현상이 나타났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60년대 다시 복원 공사를 했지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습도 조절을 위해 에어컨을 수입해 석굴암에 설치한 것이죠. 이는 청와대보다 먼저 에어컨을 설치한 예외적인 사례로, 얼마나 심각한 문제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국내 에어컨의 역사는 1960년대 범양상선이 일본 다이킨Daikin 에서 에어컨을 수입 판매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1960년대 말에는 청계천의 경원 기계 공업이 미군 부대의 고물을 수리해 판매하면서 ‘센추리’ 에어컨이 탄생했죠.
국내에서 최초로 생산한 창문형 에어컨 GA-111
금성사에서 1968년 창문형 에어컨을 자체 생산했으나, 금성사 역시 다른 나라 업체의 기술을 응용해 제품을 개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1986년에 이르러서야 독자적인 기술로 개발된 제품이 등장하며, 한국은 비로소 냉방 기술의 생산국으로 전환한다. 미국에 수출까지 하게 됩니다.

Fig.6 에어컨이 만든 수직 도시

에어컨은 실내를 시원하게 만드는 기계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강철 프레임과 엘리베이터, 콘크리트와 함께 20세기 고층 건축을 가능하게 만든 핵심 기술 중 하나였습니다.
19세기 말부터 철골 구조와 엘리베이터는 고층 건축의 물리적 기반을 제공했지만, 실내 환경을 쾌적하게 유지하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죠. 1931년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에어컨을 갖추지 못한 채 준공되어 여름철 임대율이 떨어지는 문제를 겪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메커니컬 플로어라 불리는 환기층을 따로 만들거나 거대한 천장 선풍기를 이용해 공기를 강제로 순환시키는 방식을 사용했지만, 이로 인해 건물 효율성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에어컨의 등장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건물 내부는 연중 내내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어쏙, 공기 순환도 보다 안정적으로 이루어졌죠. 그 결과, 건축 설계는 더 이상 외부 창문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방식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958년에 완공된 시그램 빌딩입니다.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설계한 이 건물은, 1930년의 크라이슬러 빌딩이나 1931년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처럼 창문을 열어 자연 환기를 하도록 설계된 기존 고층 빌딩과 달리, 중앙 냉방과 에어컨을 전제로 한 전면 유리 커튼월 구조를 도입했습니다. 이로써 완전히 밀폐된 공간에서도 쾌적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 초고층 건물의 표준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죠.
에어컨은 더위만 해결한 것이 아니라, 도시 구조와 건축 설계, 산업 구조까지 바꿔놓은 기술이었습니다. 병원, 호텔, 사무실 등 다양한 기능이 고층 빌딩 안에서 동시에 운영될 수 있도록 만들었고, 도시를 위로 확장할 수 있게 했습니다. 즉, 에어컨은 근대 도시 산업 구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Reference.

Allan Kirkpatrick. (2017). Introduction to Refrigeration and Air Conditioning Systems. y Morgan & Claypool.
R V Simha. (2012). Willis H Carrier - Father of Air Conditioning. Journal of Science Education.
James Burke. (2000). Circles: Fifty Round Trips Through History Technology Science Culture. Simon and Schuster.
김유경. (2007). 에어컨의 역사와 원리. URL: https://m.etnews.com/200706270028
강갑생. (2021). 교통전문기자의 교통이야기 (2) 80여 년 전 ‘에어컨’과 첫 만남, 여름에 기차 창문이 닫혔다. 교통 기술과 정책, 제18권 제4호